성인 ADHD 자가진단, 게을러서가 아니었다면

제출까지 사흘 남았습니다. 해야 하는 걸 압니다. 중요한 것도 알고, 늦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압니다. 노트북 앞에 앉았어요. 그런데 손이 안 움직입니다.

대신 서랍을 정리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요. 서랍은 지금 안 치워도 됐는데 말이죠.

같은 사람이 어젯밤에는 관심도 없던 주제의 영상을 새벽 네 시까지 봤습니다. 눈이 시릴 때까지요. 그러니까 집중이 안 되는 사람이 아닌 겁니다. 집중을 마음대로 켜고 끄지 못하는 쪽에 가까워요.

이 차이가 이 글의 전부입니다. 이걸 게으름이라고 부르면 20년을 엉뚱한 방법으로 보내게 됩니다.

게으름과는 어디서 갈리나

게으른 사람은 하기 싫습니다. 안 해도 마음이 크게 안 불편해요. 그래서 안 합니다. 단순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 반대예요. 하고 싶은데 시작이 안 됩니다. 안 하고 있는 내내 죄책감이 돌아가고, 마감 전날 밤에는 몰아쳐서 결국 해냅니다. 그래놓고 다음엔 미리 해야지 하고 또 똑같이 반복해요.

갈리는 지점을 세 군데로 적어볼게요.

어른이 되고 나서 더 힘들어진 이유

많은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학교 다닐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그럴 만합니다. 학교에는 시간표가 있었어요. 몇 시에 뭘 하는지 남이 정해줬고, 시험 범위도 알려줬고, 종이 치면 다음으로 넘어갔습니다. 안 하면 잔소리해주는 사람도 있었고요.

어른의 하루에는 그게 없습니다. 회사 일은 순서를 스스로 짜야 하고, 집안일은 아무도 종을 안 쳐줍니다. 애를 키우면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일정까지 머릿속에 넣고 있어야 하죠.

그러니까 사람이 나빠진 게 아니라 버텨주던 바깥 구조가 사라진 겁니다. 승진해서 관리 업무가 늘었을 때, 아이가 태어났을 때, 프리랜서로 나왔을 때 갑자기 힘들어졌다면 대개 이 이유예요.

세 갈래로 나타납니다

첫째, 주의력. 딴 데로 새는 것만이 아닙니다. 재미없는 일 쪽으로 주의를 끌어다 놓는 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회의 중 딴생각, 읽던 줄 또 읽기, 상대 말이 중간부터 안 들리는 일이 생깁니다.

둘째, 충동성. 말이 먼저 나갑니다. 상대 말이 끝나기 전에 답이 튀어나오고, 장바구니 결제를 생각하기 전에 눌러요. 화가 확 올라왔다가 십 분 뒤에 사그라지는 것도 여기 들어갑니다.

셋째, 안절부절. 어릴 때는 교실을 돌아다니는 형태였다면, 어른이 되면 대개 안으로 들어갑니다. 겉으로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 다리를 계속 떨고, 머릿속은 시끄럽고, 쉬는 게 오히려 불편해서 계속 뭔가를 만들어냅니다.

세 가지가 다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주의력 쪽만 두드러지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18문항 자가진단

최근 여섯 달을 떠올리면서, 자주 그렇다 싶은 것만 세어보세요. 가끔 한 번은 빼고요.

  1. 중요한 일일수록 시작을 미루고, 마감 직전에야 손을 댄다
  2. 해야 할 일 대신 급하지 않은 딴일을 하고 있다
  3. 일을 80퍼센트까지 해놓고 마무리를 못 한 채 넘어간다
  4. 지갑·열쇠·휴대폰·서류를 자주 못 찾는다
  5. 서류 제출, 신청, 회신을 기한 넘겨서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6. 대화 중에 상대 말을 놓쳐서 다시 물어본다
  7. 글이나 문서를 읽다가 같은 줄을 여러 번 다시 읽는다
  8. 말이 하고 싶어서 상대가 끝나기 전에 끼어든다
  9. 순서를 정하는 게 어렵다. 다 중요해 보여서 아무것도 못 고른다
  10. 얼마나 걸릴지 예상이 자주 빗나간다. 30분이라 생각한 게 세 시간이 된다
  11.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서 다리를 떨거나 자꾸 자세를 바꾼다
  12. 쉬는 게 불편해서 굳이 일을 만들어낸다
  13. 흥미 있는 일에는 밥때를 놓칠 만큼 몰입한다
  14. 충동적으로 사거나 결정하고 나중에 후회한다
  15. 감정이 확 올라왔다가 금방 가라앉는다
  16. 사소한 지적에도 크게 무너지고 한참 곱씹는다
  17. 어렸을 때도 산만하다, 덜렁댄다, 노력만 하면 잘할 텐데라는 말을 들었다
  18. 이것 때문에 일·학교·관계에서 실제로 손해를 본 적이 있다

0~5개는 많은 사람에게 있는 정도입니다. 6~11개면 생활에 걸리적거리기 시작한 상태예요. 아래 방법을 써볼 시점입니다. 12개 이상이면 마음먹기로는 잘 안 되는 구간일 수 있습니다.

개수보다 중요한 게 두 문항 있어요. 17번과 18번입니다. 어릴 때부터 있었고 지금 실제로 손해를 보고 있다면, 개수가 적어도 한번 알아볼 만합니다. 반대로 개수는 많은데 최근 1~2년 사이에만 생겼다면 다른 이유일 가능성이 커요.

이 목록은 참고용입니다. 진단은 의사만 할 수 있어요. 여기 문항 대부분은 잠이 부족하거나 우울하거나 심하게 지쳐 있을 때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그래서 숫자로 결론 내리지 마시고, 알아볼지 말지를 정하는 기준으로만 쓰세요.

비슷하게 보이는 것들

병원에 가면 이 부분을 먼저 걸러냅니다. 순서를 알고 가면 덜 헤매요.

참고로 둘 이상이 같이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오래 힘들었으면 그 위에 우울이나 불안이 얹혀 있기 마련이라서요.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고 이상한 게 아닙니다.

조용한 쪽은 늦게 발견됩니다

서른 넘어, 마흔 넘어 처음 알게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여성 쪽에서 그런 경우가 많아요.

돌아다니거나 소리를 지르는 형태가 아니면 어릴 때 눈에 안 띕니다. 조용히 앉아서 창밖을 보고 있었으면 야단맞을 일이 없었어요. 성적이 괜찮았으면 더더욱요. 대신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랍니다. 덤벙댄다,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냐,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될 텐데.

그 말들이 쌓이면 문제의 이름이 바뀝니다. 나는 주의가 잘 흩어지는 편이다가 아니라 나는 원래 못난 사람이다가 돼요. 그래서 이 시기에 알아보러 오는 분들은 증상보다 자책이 더 커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짚고 갈게요. 지금까지 남들만큼 해낸 게 있다면, 그건 남들보다 적은 도구로 해낸 겁니다. 못한 것만 세지 마세요.

오늘부터 해볼 수 있는 것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의지를 키우는 게 아니라 의지가 덜 필요하게 판을 바꾸는 쪽입니다.

  1. 2분만 하기. 시작이 제일 무겁습니다. 보고서 쓰기 말고 파일 열고 제목만 치기로 쪼개세요. 일단 시작되면 이어지는 건 오히려 쉬운 편입니다.
  2. 머리 밖에 적어두기. 기억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 자리에서 캘린더에 넣고 알림을 겁니다. 기억력을 훈련하는 것보다 훨씬 값이 쌉니다.
  3. 물건 자리를 한 곳으로. 열쇠·지갑·카드는 현관에 그릇 하나 놓고 거기만. 찾는 데 쓰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인지 세어보면 놀랍니다.
  4. 남 앞에서 하기. 카페, 도서관, 또는 화면 켜놓고 같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됩니다. 누가 옆에 있으면 이상하게 손이 움직여요. 실제로 많이들 쓰는 방법입니다.
  5. 시간을 눈에 보이게. 30분 타이머를 눈앞에 켜두세요. 머릿속 시계가 잘 안 맞는 편이라 밖에 하나 두는 겁니다.
  6. 알림 줄이기. 한 번 새면 돌아오는 데 오래 걸립니다. 아예 안 새게 하는 쪽이 쌉니다. 작업 중엔 휴대폰을 다른 방에.
  7. 몸부터. 잠·운동·카페인 양. 시시해 보이지만 못 잔 다음 날은 위 문항 전부가 진해집니다. 방법을 바꾸기 전에 여기부터 봐야 해요.
  8. 지루한 일에 소리 붙이기. 설거지나 서류 정리처럼 재미없는 일에 좋아하는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겁니다. 지루함이 조금 채워지면 몸이 훨씬 잘 움직입니다.

오히려 나빠지는 방법들

알아보러 가는 게 좋은 선

다음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락해보세요.

가실 때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어요. 어릴 적 통지표나 생활기록부, 가족에게 들은 어린 시절 이야기, 위 18문항 중 해당된 번호, 그리고 요즘 잠을 몇 시간 자는지. 이 정도만 들고 가도 첫 상담이 훨씬 빨리 갑니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역마다 있고 비용 부담 없이 상담받을 수 있습니다. 알아본다고 뭐가 바로 달라지진 않아요. 다만 이름이 붙으면 자책이 줄어듭니다. 20년 동안 나는 왜 이럴까였던 게 이런 특성이 있구나로 바뀌는 것만으로도 숨이 트인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미루는 자신을 계속 탓하게 된다면 자책이 멈추지 않을 때를,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오래됐다면 무기력할 때를 같이 보세요. 지쳐서 그런 건지 헷갈린다면 번아웃과 그냥 피곤한 것의 차이도 있습니다.


아무한테도 못 한 말을 이름 없이 적어보는 것도 한 칸입니다. 그럴 곳이 필요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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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마음이 계속된다면 혼자 견디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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