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
퇴근길 지하철에서 갑자기 눈이 뜨거워집니다. 슬픈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방금 본 광고가 특별했던 것도 아닌데요. 설거지를 하다가,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다가, 누가 별생각 없이 "밥은 먹었어?" 하고 물었을 때 툭 터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당황합니다. 왜 우는지 스스로도 모르니까요. 이상해진 것 같고, 어디 가서 말하기도 애매합니다.
먼저 하나만 짚고 가면, 눈물에 이유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유가 없는 게 아니라 이유를 못 찾고 있는 것에 가까워요. 눈물은 그때 그 자리에서 생긴 감정이 아니라, 오래 쌓여 있다가 사소한 것에 걸려 넘어진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 하필 아무 일도 없을 때 터질까
이상하게도 눈물은 힘든 순간 한복판에서는 잘 안 납니다. 장례식장에서 멀쩡하다가 며칠 뒤 집에서 무너지고, 큰 프로젝트가 끝난 다음 날 아침에 터집니다.
버티는 동안에는 몸이 감정을 뒤로 미뤄둡니다. 지금 처리할 여유가 없으니까요. 그러다 긴장이 조금 풀린 순간, 미뤄둔 게 한꺼번에 올라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시점은 대개 제일 힘들 때가 아니라, 힘든 게 조금 지나간 뒤입니다.
혼자 있을 때나 별일 없는 순간에 자꾸 터지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위험한 신호라서가 아니라, 그제야 자리가 났기 때문입니다.
몸에서 오는 경우
마음 문제로만 보다가 놓치기 쉬운 쪽입니다. 눈물이 잘 나는 상태로 몸을 만들어놓는 것들이 있어요.
- 잠. 제일 흔합니다. 며칠만 덜 자도 감정을 누르는 힘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겼을 말에 울컥하게 돼요.
- 호르몬 주기. 생리 전, 출산 후, 갱년기처럼 주기가 있는 시기에는 같은 자극에도 눈물이 훨씬 쉽게 납니다. 달력에 표시해보면 패턴이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 갑상선. 갑상선 기능에 변화가 있으면 기분이 가라앉거나 예민해지는 게 같이 옵니다. 피로·체중 변화·추위나 더위를 유난히 타는 게 함께라면 한번 확인해볼 만합니다.
- 철분·빈혈. 어지럼, 숨 참, 유난한 피로가 같이 온다면 이쪽도 봐야 합니다.
- 복용 중인 약. 새로 먹기 시작한 약이 있다면 시점을 맞춰보세요. 시작한 날과 눈물이 잦아진 날이 겹친다면 처방한 곳에 그대로 말하면 됩니다.
- 술과 카페인. 둘 다 다음 날 감정 기복을 키웁니다. 특히 술 마신 다음 날 눈물이 잦다면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 있는 것들은 병원에서 확인하면 대체로 금방 답이 나옵니다. 마음부터 파고들기 전에 몸 쪽을 먼저 지워두면 헤매는 시간이 줄어요.
마음에서 오는 경우
몸 쪽이 아니라면, 대개 아래 넷 중 하나입니다.
- 쌓인 스트레스. 하나하나는 견딜 만한데 몇 달째 겹쳐 있는 상태. 이때 눈물은 고장이 아니라 용량 초과 신호에 가깝습니다.
- 다 타버린 상태. 눈물과 함께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일이 남 일처럼 느껴진다면 번아웃 쪽일 수 있습니다.
- 애도. 사람뿐 아니라 관계, 직장, 살던 도시, 반려동물처럼 잃은 것이면 다 해당합니다. 애도의 눈물은 몇 달 뒤에 뒤늦게 오는 게 정상이에요.
- 가라앉은 기분이 길게 이어지는 것. 2주 넘게 계속되고 흥미와 잠·식욕까지 같이 바뀌었다면 이쪽 글을 같이 보세요.
참고로 우울이 깊어지면 눈물이 늘기도 하지만, 반대로 울고 싶은데 울어지지 않는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눈물이 나는 게 더 나쁜 신호는 아니라는 뜻이에요.
자가 점검
최근 한 달을 떠올리면서 해당하는 것만 세어보세요.
-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눈물이 났다
- 울기 시작하면 멈추는 데 오래 걸린다
- 사람들 앞이나 회사에서 터진 적이 있다
- 왜 우는지 나도 설명하지 못한다
- 사소한 말이나 장면에 갑자기 반응한다
- 울고 나도 시원하지 않고 더 지친다
- 잠이 부족하거나 잠들기 어려운 날이 많다
- 좋아하던 것에 흥미가 줄었다
-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 이런 상태가 2주 넘게 이어지고 있다
3개 이하면 대체로 지나가는 시기입니다. 잠과 일정부터 챙겨보세요.
4~6개면 쌓인 게 있다는 뜻입니다. 아래 방법들을 해보고, 2주 뒤에 다시 세어보세요.
7개 이상이거나 10번(2주 이상)에 해당한다면 혼자 버티기보다 한 번 도움을 받는 편이 낫습니다.
이건 참고용 목록이에요. 진단은 의사만 할 수 있고, 앞에서 말한 몸 쪽 원인이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개수로 결론 내리지 마시고 도움을 청할지 정하는 기준으로만 쓰세요.
지금 눈물이 나오려 할 때
밖에 있는데 올라올 때 쓸 수 있는 것들입니다. 참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원하지 않는 자리에서 잠깐 미루는 방법이에요.
- 숨을 내쉬는 쪽으로 길게. 4초 들이마시고 8초 내쉬기를 세 번. 들이마시는 것보다 내쉬는 걸 길게 하는 게 핵심입니다.
- 차가운 것 대기. 손목이나 목 뒤에 찬물이나 차가운 캔을 대면 올라오던 게 한 박자 늦춰집니다.
- 눈에 보이는 것 다섯 개 세기. 주변 사물을 속으로 하나씩 이름 붙여보세요. 밖으로 주의를 돌리는 것만으로 파도가 낮아집니다.
- 자리 뜨기. 화장실이든 계단이든 1분만. 사람들 시선이 사라지면 몸이 알아서 가라앉습니다.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 일어나는 시간부터 고정하기. 잠드는 시간은 마음대로 안 되지만 일어나는 시간은 잡을 수 있습니다. 눈물이 잦은 시기에 제일 효과가 큰 게 이거예요.
- 언제 났는지만 적어두기. 날짜, 시간, 직전에 있었던 일 한 줄. 2~3주만 모여도 규칙이 보입니다. 대개 특정 요일, 특정 사람, 특정 시간대에 몰려 있어요.
- 이름을 붙여보기. "그냥 눈물이 나"보다 "억울했나 보다", "지쳤나 보다"까지 가면 다음번엔 눈물보다 말이 먼저 나옵니다.
- 울 자리를 정해두기. 참으면 엉뚱한 데서 터집니다. 집에 와서 10분, 샤워하면서처럼 안전한 자리를 정해두는 게 오히려 낫습니다.
- 한 사람에게만 말해두기. 설명까지 할 필요 없이 "요즘 눈물이 잦아" 한마디면 됩니다. 다음에 터졌을 때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게 생각보다 큽니다.
미루지 않는 게 좋은 선
- 눈물 때문에 출근이나 학교생활이 실제로 어려워졌다
- 웃음이나 눈물이 상황과 맞지 않게 터지고 스스로 못 멈춘다
- 두통, 어지럼, 말이 어눌해지는 것 같은 몸 증상이 같이 온다
- 술을 마셔야 잠들거나 눈물이 멎는다
-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
마지막 항목에 해당한다면 다른 것보다 먼저입니다. 지금 바로 109로 전화하셔도 됩니다.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도 비용 부담 없이 상담받을 수 있어요.
기분이 오르내리는 폭이 크다면 감정 기복이 심할 때를, 밤에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면 잠들기 전 생각이 많을 때를 같이 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왜 울었는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만 적어두면 나중에 이유가 보일 때가 있어요. 이름 없이 적을 곳이 필요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