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 자가진단, 확인하고 또 확인하게 될 때
현관을 나섰습니다. 문은 분명히 잠갔어요. 손잡이를 흔들어본 것도 기억납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잠갔나. 아까 그건 어제 기억 아닌가.
결국 올라가서 확인합니다. 잠겨 있어요. 잠깐 마음이 놓입니다. 그리고 버스에서 또 시작돼요.
이 순서를 여러 번 겪었다면 한 가지만 먼저 짚고 갈게요. 이건 기억력 문제가 아닙니다. 확인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도 아니고요. 오히려 확인을 많이 할수록 심해지는 구조라서 힘든 겁니다.
강박은 두 덩어리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강박사고예요. 원하지도 않는데 불쑥 들어오는 생각입니다. 가스불을 안 껐을 것 같다, 손에 뭐가 묻었을 것 같다, 내가 실수해서 누가 다칠 것 같다. 밀어내려 할수록 더 선명해집니다.
다른 하나는 강박행동입니다. 그 생각이 주는 불편을 없애려고 하는 일이에요. 확인하기, 씻기, 세기, 순서 맞추기, 머릿속으로 계속 되짚기.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것도 많습니다.
둘은 이렇게 붙어 있어요. 생각이 온다 → 불안해진다 → 행동으로 없앤다 → 잠깐 편해진다. 여기까지 보면 나름 잘 대처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다음이에요.
왜 하면 할수록 심해질까
확인은 안심을 삽니다. 대신 이자가 붙어요.
확인해서 편해질 때마다 머리는 이렇게 배웁니다. 확인했으니까 괜찮았던 거구나. 그러면 다음번엔 확인 없이 넘어가는 게 더 불안해져요. 한 번이면 되던 게 세 번이 되고, 세 번이 다섯 번이 됩니다.
여기에 하나 더 얹힙니다. 같은 걸 반복해서 볼수록 기억이 오히려 흐릿해져요. 처음 잠근 기억과 두 번째 확인한 기억이 겹쳐서 어느 게 오늘 것인지 헷갈립니다. 그래서 확인을 더 하게 되고, 더 헷갈립니다.
정리하면 이래요. 확인이 부족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확인해서 불안이 자란 겁니다. 이걸 알고 있어야 다음 이야기가 말이 됩니다.
꼼꼼한 성격과는 어디서 갈리나
정리를 좋아하고 마감을 미리 끝내는 사람을 두고 "강박이 있다"고 흔히 말합니다. 그건 성향이지 이 글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갈리는 지점은 세 군데예요.
- 내가 원해서 하느냐. 꼼꼼한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게 좋아서 합니다. 강박은 하기 싫은데 안 하면 못 견뎌서 해요. 끝나고 뿌듯한 게 아니라 지칩니다.
- 시간을 얼마나 먹느냐. 하루 한 시간 넘게 이 일에 붙들려 있다면 성향의 범위를 넘어선 겁니다. 지각, 야근, 약속 취소가 여기서 나옵니다.
- 말이 안 된다는 걸 아느냐. 강박은 대부분 본인이 압니다. 문은 잠겼다는 걸 알아요. 아는데도 몸이 안 놓아주는 게 특징입니다.
12문항 자가진단
최근 한 달을 떠올리면서, 해당하는 것만 세어보세요.
- 문·가스·전기·수도를 두 번 이상 확인하고 나온다
- 확인하려고 갔던 길을 되돌아온 적이 있다
- 손을 씻는 횟수나 시간이 남들보다 많다고 느낀다
- 더럽다고 느껴지는 물건이나 장소를 피해 다닌다
- 물건이 제자리나 각도에 맞지 않으면 불편해서 손이 간다
- 보낸 메시지나 제출한 서류를 여러 번 다시 읽는다
- 원치 않는 생각이 불쑥 떠올라 스스로 놀란 적이 있다
- 그 생각을 지우려고 다른 생각이나 숫자를 머릿속으로 반복한다
- 주변 사람에게 "괜찮은 거 맞지?"라고 자주 확인한다
- 이것 때문에 늦거나 약속을 미룬 적이 있다
- 안 하면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아서 하는 행동이 있다
- 하루에 이 일로 쓰는 시간이 한 시간을 넘는다
0~3개는 많은 사람에게 있는 정도입니다. 4~7개면 생활이 조금씩 이 규칙에 맞춰지고 있는 상태예요. 아래 방법을 써볼 시점입니다. 8개 이상이면 혼자 마음먹는 것으로는 잘 안 되는 구간일 수 있습니다.
개수와 상관없이 10번이나 12번에 해당한다면 숫자를 세지 말고 도움을 알아보세요. 시간을 실제로 뺏기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이 목록은 참고용입니다. 진단은 의사만 할 수 있고, 불안이나 우울이 같이 있으면 여기 문항에 더 많이 해당하기도 해요. 개수로 결론 내리지 마시고 도움을 청할지 정하는 기준으로만 쓰세요.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게 제일 무섭다면
이 부분은 따로 적어둘게요. 사람들이 가장 말 못 하고 혼자 앓는 대목이라서요.
운전하다가 누굴 칠 것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거나, 아이를 안고 있는데 떨어뜨리는 그림이 스치거나, 믿는 것에 대해 험한 말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일. 이런 생각이 들고 나면 내가 그런 사람인가 싶어서 아무한테도 말을 못 합니다.
알아두면 좋은 게 있어요. 이런 침투적인 생각 자체는 대부분의 사람이 겪습니다. 차이는 그다음이에요. 대개는 "별 생각을 다 하네" 하고 흘려보냅니다. 강박에서는 그 생각에 의미를 붙여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는 건 내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요.
그런데 순서를 뒤집어 보면 이렇습니다. 그 생각을 이렇게까지 두려워한다는 건, 그게 자기가 절대 원하지 않는 일이라는 증거에 가까워요. 생각과 사람됨은 같은 게 아닙니다.
다만 이런 생각이 자주 오고 그것 때문에 일상이 좁아진다면, 혼자 견디기보다 상담을 알아보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이 영역은 특히 혼자서 잘 안 풀려요.
오늘부터 해볼 수 있는 것
- 확인 횟수를 정해두기. 없애려 하지 말고 숫자를 줄이세요. 지금 다섯 번이면 이번 주는 네 번으로. 0으로 가는 건 나중 일입니다. 한 번에 끊으려다 실패하면 오히려 늘어나요.
- 한 번 확인할 때 진하게. 문을 잠그면서 소리 내어 말해보세요. "지금 문 잠갔다." 손잡이도 한 번만 확실하게 흔듭니다. 흐릿하게 여러 번보다 또렷하게 한 번이 기억에 남습니다.
- 불안이 내려가는 걸 기다려보기. 확인하고 싶을 때 바로 하지 말고 시간을 재보세요. 5분만 미루기부터요. 불안은 올라갔다가 반드시 내려옵니다. 확인해서 내려간 게 아니라 저절로 내려간다는 걸 몸이 알아야 합니다.
- 사진이나 메모는 조심스럽게. 잠근 문을 찍어두는 방법은 초반에 도움이 되지만, 사진을 계속 다시 보게 되면 그것도 확인 행동이 됩니다. 임시 도구로만 쓰세요.
- 생각을 밀어내지 않기. "이 생각 하지 말아야지"는 반대로 갑니다. 흰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흰곰만 떠오르는 것과 같아요. 왔구나 하고 놔두면 알아서 지나갑니다.
- 남에게 물어보는 것도 확인입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지?"를 반복하는 것도 같은 고리예요. 가족에게 미리 말해두세요. 물어봐도 대답 대신 옆에 있어달라고요.
- 잠과 카페인부터. 못 자고 카페인이 많은 날 강박은 눈에 띄게 세집니다. 이건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예민해진 겁니다.
오히려 나빠지는 방법들
- 완벽하게 안심될 때까지 확인하기. 그 지점은 오지 않습니다. 100퍼센트 확실은 원래 없어서요.
- 의지로 한 번에 끊기. 며칠 참다가 크게 무너지면 예전보다 늘어납니다. 계단은 낮을수록 좋아요.
- 계속 검색하기. 증상을 밤새 찾아보는 것도 안심을 사는 행동입니다. 잠깐 편하고 더 불안해져요.
- 피해 다니기. 그 물건, 그 장소, 그 일을 아예 안 하면 편해집니다. 대신 못 가는 곳이 한 칸씩 늘어납니다.
- 술로 누르기. 그날은 되지만 다음 날 더 세게 돌아옵니다.
도움을 청하는 게 좋은 선
다음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락해보세요.
- 하루 한 시간 넘게 확인이나 씻기에 쓴다
- 이것 때문에 지각·결근·약속 취소가 생겼다
- 가족이 내 규칙에 맞춰주느라 힘들어한다
- 손이 트거나 피부가 상할 만큼 씻는다
- 원치 않는 생각 때문에 사람이나 장소를 피한다
- 혼자 여러 번 줄여봤는데 매번 제자리로 돌아온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역마다 있고 비용 부담 없이 상담받을 수 있어요. 강박은 성격을 뜯어고치는 일이 아니라 안심을 사던 습관을 하나씩 되돌리는 연습에 가깝습니다. 방법이 꽤 정리되어 있는 영역이라, 순서를 알고 하면 혼자 씨름할 때보다 훨씬 빨리 움직입니다.
불안이 확인 말고 평소에도 계속된다면 불안장애 자가진단을, 밤에 생각이 안 멈춘다면 잠들기 전 생각이 멈추지 않을 때를 같이 보세요. 이런 자신을 자꾸 탓하게 된다면 자책이 멈추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아무한테도 못 한 생각을 이름 없이 적어보는 것도 한 칸입니다. 그럴 곳이 필요하다면.